7월 4일(일) 맑음.
Banaue->산상 휴양도시 Baguio
08시 35분, Hotel Banaue.
09시,도중에 민속 전망대, 고풍스러운 목각을 팔던 곳인데 우리나라 서낭당 분위기가 나는 조형물들 있다..
09시 26분, Lanawe Bridge까지 내려와 철교에서 다시 등판 시작,
09시 55분, Lamut 강, 다리 통과 산지 끝.
바기오 쪽으로 들어서서는 계속 계곡을 따라 달린다.
산허리를 돌아서니 댐이 보인다.
계속 올라가다
14시에 Baguio 도착(해발 1,500m, 연평균기온이 17.9도),
스페인 식민지 시절 금광개발로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한 후
20세기 초부터는 미국인들이 피서지로 개발,
2차대전 전에는 여름 수도,지금도 3월부터 5월까지는 행정수도가 옮겨 온단다.
인구 30만, 마닐라 250km. 한국인 어학연수 중심지. 대학 6개, 학원 10개, 필리핀에서 영어발음이 가장 정확한 편이란다,
월 하숙비 50~60만 원.
산 능선 따라 자리 잡은 숲 속 도시라 산만하고 교통 혼잡하여 공기는 별로 좋지 않다.
14시 10분, 한국식당 칠천각 점심(온통 한국 학생들).
15시 30분, 호텔 Baguio Palace 입실 휴식.
18시 35분, Mine Park View point 조망(최초 광산개발지역)
19시 40분, 칠천각 돼지족발, 짬뽕 국물, 된장찌개. 한국식 맛과 분위기 저녁 식사.
휴양지라고 하지만 1,500m 고지대이므로 장기간 거주 시에는 많은 부작용이 있단다.
식당을 하는 젊은 한국인도 기압차이로 말미암아 건강상 문제가 있단다.
노후를 즐기려 이곳에 온 사람들은 골프 외에는 할 일이 없고 외지로 드나들기 불편해서 권할만한 곳은 못 된단다.
비행기에서 본 Manila City.
5명이니 택시 1대로는 안된다.
공항택시조합(?)에서 티켓을 끊어(밴 500페소-일반택시는 200페소)) 조영란 사장이 예약해준 시내에 있는 Executive Plaza Hotel 로 갔다.
호텔 체크인 후 1시에 한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필요한 물품을 준비하고 쉬었다.
시내에서 택시를 타는데 미터기는 장식용이다.
모두 흥정을 해야 한다.
공항에서 시내까지가 택시로 200페소인데 시내에서도 무조건 200페소를 달란다.
아무리 깎아도 150페소 이하로는 양보하지 않는다.
필리핀에는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세계의 여행지 1000곳 중 3곳이 있다.
마닐라 시티 근처에 있는 tagaytay, 마니라 북쪽 430km에 있는 Banaue의 계단식 논, 루손 섬 남쪽 끝에 있는 도시 Legazpi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화산 Mayon Volcano 등이다.
마닐라 시내와 Tagaytay를 묶어서 1일 투어에 1인당 3,000페소를 달란다.
1인당 \90,000이다.
Rent a car를 하려니 기사, 유류대, 입장료 포함해서 8,000페소란다.
우리는 다섯 명이니 반값 정도가 된다.
이 가격도 우리나라 12인승 밴을 빌리는 값보다 비싸다.
내일 08시 30분에 떠나기로 하고 예약을 했다.
저녁은 호텔 소개로 이슬람 식당 Ram앤Ram으로 갔다.
맛도 있고 값도 저렴하다.
7월 2일(금)
08시 40분, 마닐라 남쪽 64km에 있는 Tagaytay로 달렸다.
10시 50분에 분화구 정상의 전망대에 올랐다.
타가이타이는 평균 해발이 700m가 넘는 마닐라 근교의 휴양지로 별장지대다.
정상에는 화산폭발 때문에 생긴 Taal호수가 있다
이 호수는 필리핀에서 3번째로 큰 호수란다.
이 호수 안에는 여러 개의 섬이 있고 그 가운데 작은 화산이 폭발해서 생긴 분화구가 또 있다.
그 화산은 1965년도에도 폭발해서 2,000여 명의 희생자를 낸 활화산이란다.
작은 화산에도 물이 고여 예로 호라는 호수가 만들어졌다.
이러한 특수지형이 세계의 관광지 1000개 중에 들어 있는 모양이다.
Tagaytay 산 위의 Taal호수.
화산호수 속의 기생화산 예로우 호수.
아직 활화산으로 1965년도에도 폭발해서 2,000여 명의 희생자를 냈단다.
산 정상의 기념품 가게.
기념품.
기념품.
Taal 호수의 관광선.
배의 안전을 위해 아웃 리거가 달려 있다.
13시 20분, 마닐라 시내로 들어와 거창 출신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 '솔'에서 낙지 불고기로 점심을 먹었다.
점심 후 리잘 공원, 스페인 성벽, 성 오거스틴 성당, 국립박물관 등을 보고 호텔로 귀환.
Rizal Park.
필리핀 독립운동의 영웅 리살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공원이다.
마닐라 시내에 있는 대성당.
(Manila Metropolitan Cathedral).
성당 안의 聖畵.
聖壇.
調刻 La Pieta.
St. Peter's Basilica in Vatican City에 있는 유명한 조각의
모조품이다.
대성당 입구로 들어가 좌측 별실에 있다.
La Pieta 소개문.
국립박물관의 소장품 중에서...
입장료가 89페소다.
경로우대로 60페소.


라살 초상화.
국립박물관.
마닐라 북쪽 바나우에와 바간, 그리고 마르코스 대통령의 고향 바탁을 돌아는 3박 4일간 차를 빌리는데 33,000페소를 달란다.
자동차만 빌리면 우리가 직접 운전하려고 하는데 그건 안된단다.
호텔 주변을 뒤져서 한국인이 경영하는 여행사 Kim's Tour를 찾아가 사장과 면담하니 자동차만 빌려 주는데 19,000페소를 달란다.
호텔비와 기름값, 고속도로 통행료를 합해보니 적절치가 않다.
다시 호텔에 와서 32,000페소에 예약을 했다.
저녁은 극장식 식당에서 아기 통돼지 바비큐로 맛있는 별식을 즐겼다.
5명이 맥주 포함해서 2,200페소.
값도 저렴하다.
7월 3일(토)
마닐라->Banaue Rice Terraces
08시 50분, 호텔 출발.
시내를 빠져나가 고속도로에 진입하는데 1시간이 걸린다.
09시 52분, 시내 외곽 TG 고속도로 진입, 11시 02분, 고속도로 끝.
산 하나 보이지않는 끝없는 평야 지대, 토질 양호하나 휴경지가 많다.
12시 40분, 산호세 Cafeteria 식당 점심.
13시 28분, 산간도로 진입.
17시 16분, 마닐라에서 334km,
17시 35분, Banaue View Point
Banaue : 코르딜리아 산맥 속에 있는 이 마을에는 총 4천 세대, 인구 2만 2천이 산다,
해발 1,200m, 마닐라 348km.
Rice Terraces를 자기들끼리 세계 8대 불가사의라 부른다.

지프니들.
마닐라의 대중교통은 엔진을 구해서 손으로 두들겨 만든 지프니들이다.
바나우에 가는 길.
바나우에는 마닐라에서 북쪽으로 348km.
밴으로 8시간 30분 걸렸다.
바나우에 가는 길.
계단식 논이라 불리며 바나우에서 동쪽으로 약 16km 떨어진 곳에 있는 라이스 테라스는 대단한 규모는 아니지만‘세계 8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힐 만큼 경이롭다.
라이스 테라스는 산을 계단식으로 깎아 만든 논을 말하는데 약 2천 년 전에 이푸가오족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했다.
"바타드"라는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이곳은 높이 1,500m 고지에 있며 논둑을 일자로만 연결한다면 지구의 반 바퀴나 도는 거리라고 한다. 1995년 유네스코에서 자연유산으로 지정했다.
계단식 다락논 전망대 1~3Point 관람. 날씨 좋았다.
바나우에에서 라이스 테라스 뷰 포인트 안내 표시
세 군데의 뷰 포인트가 있다.
뷰 포인트 안내 표시.
라이스 테라스.

라이스 테라스.
화분들.
라이스 테라스를 배경으로.

염원을 담고.....
라이스 테라스(빌려온 사진)
바나우에 관광호텔.
라이스 테라스 투어 맵.
호텔에서 본 산속의 라이스 테라스.
곳곳에 작은 규모의 라이스 테라스가 있다.
19시, Banaue Hotel,
고풍스럽고 아주 좋은 호텔, 그러나 TV도 냉장고도, 에어컨도 없는 고산지대. 경관 조경 좋고.
19시 25분,호텔식당에서 저녁 식사.
Antique Shop.
바니우에 에서 바기오로 나가는 도중 고갯길 중턱 길가에 있는
기념품 가게.
지금은 영업하지 않으나 토속적 목각들을 팔던 장소인가 보다.
Antique Shop.
Antique Shop.
Antique Shop.
Antique Shop.
Antique Shop.
Antique Shop.
Antique Shop.
<리살(Jose' Rizal)>
Jose' Rizal은 필리핀의 독립을 이끌어낸 민족 운동가이자 사상가다.
1861년 6월 19일 루손 섬 캄발라에 있는 부유한 지주 집안에서 태어난 리살은 마닐라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의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는 곧 스페인에 유학 온 필리핀 학생 단체의 지도자가 되었다.
리살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주장하지는 않았지만, 필리핀의 경제, 사회, 정치를 억압하고 있던 스페인의 가톨릭 수도회에 크게 반발하고 있었다.
그는 파리와 하이델베르그에서 의학 공부를 계속하면서 1886년 타갈로그어(타갈로그족의 언어로 필리핀 고유 언어 중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사용한다)로 "나에게 손대지 마라"라는 소설을 발표했다.
이어 1891년에는 '체제전복'이라는 책을 발표했는데, 이때부터 리살은 필리핀 개혁운동의 대변자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
리살은 1892년에 귀국하여 마닐라에서 비폭력 개혁단체인 필리핀 동맹(Liga Pilipinas)을 결성했다.
스페인 정부는 그를 민다나오 섬 북서부에 있는 '다피탄'으로 추방했다.
라살은 이곳에서 4년 동안 유배되어 있었다.
그러나 리살이 쓴 책들은 필리핀 민중에게 계속 영향을 주어 1896년 마닐라에서 '카티푸난(Katipunan)'이라는 비밀결사단체가 무장봉기를 일으키기에 이르렀다.
리살은 카티푸난과 아무런 관계도 없었으나 스페인 정부는 리살을 체포해 마닐라에 있는 산티아고 요새에 수감했다.
결국 리살은 재판에 넘겨져 유죄판결을 받았으며, 1896년 12월 30일 공개총살에 처했다.
리살의 공개처형은 필리핀 민중을 격분시켰고, 그 결과 대대적인 독립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서진근 편저 UN회원국 다이제스트 중에서)


면적 : 300,000km2.
인구 : 9,797만 명(2009년)
종족구성 :타갈로그족 28%, 세부아노족 13%, 일로카노어족 9%,
바시아족 8%, 힐리가이노일리고족 7.5%, 비콩족 6%,
와라이족 3%, 외국인 기타 25%.
종교 : 가톨릭 83%. 개신교 9%, 이슬람교 5%.
언어 : 타갈로그어,
영어 외 8개 주요 부족어.
화폐 : 필리핀 페소(1$ : 46.83페소(2009년 10월)
1인당 GDP : 1,866$(2008년)
<막사이사이>
막사이사이(Ramon Magsaysay)는 필리핀의 전 대통령으로 공산주의자들이 일으킨 후크발라하프(Huk balahap) 반란을 진압하여 유명해졌으며,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후 그를 기념하기 위해 막사이사이 賞이 제정되었다.
막사이사이는 1907년 Luzon 섬에서 기능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일본에 대항해 게릴라군을 이끌었으며,
미군이 필리핀을 탈환한 후 군정장관으로 임명되었다.
필리핀 독립 후 하원의원이 되었고 1950년에는 카리노대통령에 의해 국방장관으로 임명되었다.
후크발라하프는 원래 루손을 거점으로 하던 反일본 게릴라 단체였으나 1940년대 말에는 공산주의 단체로 변질했다.
후크발라하프가 루손 섬의 많은 부분을 장악하자 당시 대통령이던 카리노는 막사이사이를 국방장관으로 임명해 후크발라하프 진압을 명령했다.
막사이사이는 농민들의 복지를 위해 노력하여 농민들을 정부 편으로 끌어들이고, 부패한 군대를 개혁했다.
농민들의 지원을 받지 못한 후쿠발라하프는 급속히 약화됐다.
막사이사이는 게릴라들을 소탕하는 데 성공했으나 , 카리노 정부의 부패와 무능을 비판하여 장관직에서 해임당했다.
막사이사이는 1953년 선거에 출마해 카리노 대통령을 제치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막사이사이는 후쿠발라하프를 진압한 공적과 청렴한 성품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막사이사이는 미국의 맹방으로 反 공산주의 정책을 펴, '태평양의 아이젠하워'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막사이사이는 1957년 3월 17일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한 채 세부 섬 근처에서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
이듬해 막사이사이의 공적을 기념하기 위해 막사이사이賞을 제정하게 되었으며, 막사이사이 재단에서 해마다 언론문화와 지역사회 발전, 공공사업, 국제 협력 등의 부분에서 공헌한 사람들에게 상을 수여하고 있다.
한국인으로는 1962년 장준하를 시작으로 김활란, 김용기, 오웅진 신부, 법륜 스님, 윤혜란, 김선태 목사 등이 수상했다.
(서진근 편저 UN회원국 다이제스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