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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인도 - 암리차르(Amritsar) - 시크교도의 성지 황금사원
✍️ 이무부 📅 2013.02.08 21:23 👁 848
 
8월 28일(일).  
 
11일 만에 파키스탄을 떠난다.
국경을 넘어 인도의 암리차르로 들어간다.
파키스탄 국경까지 자동차로 이동하고 출국절차를 마친 후 인도 쪽으로 걸어서 넘어갔다.

암리차르는 인도 펀자브주의 서쪽, 파키스탄과의 국경에서 30km 정도 떨어진 인구 120여만 명의 도시이다.
1577년 시크교의 4대 그루 람다스가 시크교신앙의 중심지로서 암리타사라스(불멸의 샘)를 중심으로 건설한 도시다.
1604년 연못의 한가운데 황금사원을 건설하여 시크교의 총본산이 되었다.
1802년 란지트 싱이 황금을 씌우고 대리석을 입히다.


<시크교(Sikhism)는 힌두교와 시슬람교의 장점을 융합시켜 만든 종교로서 15세기 말 인도 서북부의 펀자브 지역에서 나나크(1469 - 1538)에 의해 창설되었다.
지금은 신도 수가 약 2,600만 명으로 세계 4대 종교(그리스도교,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다음으로 신도가 많은 종교다.
시크교의 특징은 윤회사상을 믿으며 우상숭배를 거부하고 신도들은 머리와 수염을 깎지 않고, 터번을 두르고 단검을 지니고 다닌다.
 
敎祖 나나크는 현재 파키스탄 영토인 라호르 지역의 공무원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유년기부터 종교에 매료되어 집을 떠나 성자들을 만나 종교 문답을 벌이고 다녔다.
30세경에 길을 잃고 헤매던 중 급류에 떠내려가 3일 후 목숨을 건지면서 새로운 까달음을 얻어 시크교를 창설했다고 한다.
 
 
나나크가 죽은 후 구루(Guru : 교단 지도자) 밑에서 교단이 정비되다가 제5대 구루인 아르준(1563 - 1606) 시대에 敎典이 성립되고 암리차르에 本山이 건설되는 등 완성단계에 이르렀다.
그러나 교단으로서 그 세력이 확대해 감에 따라 무굴제국으로부터 박해를 받아 아르준은 1606년 체포되어 처형당했다.
그 후 무굴제국과의 항쟁을 통하여 교단은 호전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19세기 초에는 란지드 싱(Ranjit Singh)라는 강력한 구루가 나타나 펀자브에 시크교 왕국을 건설했다.
그러나 란지트 싱이 죽자 시크교 왕국은 파벌 간의 싸움으로 급격히 몰락하게 되었다.
파벌 간의 싸움이 전쟁으로 번질  될것을 두려워 한 영국은 펀자브 지역에 군대를 파견해 1845년과 1848년에 두 차례에 걸쳐 시크전쟁을 일으켰다.
시크전쟁 결과 시크교 왕국은 멸망했고 펀자브 지역은 영국령이 되었다.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펀자브는 분할되어 서쪽은 파키스탄 영도가 되고, 동쪽은 인도 영토가 되었다.
파키스탄에 살고 있던 250만 명에 달하는 시크교도들은 인도령으로 이주했고, 그곳에 살고 있던 이슬람교도들을 내쫓았다.
이 과정에서 폭력사태가 벌어졌고 많은 인명피해를 입었다.
 
1984년 6월 인도 정부는 군대를 동원해 펀자브에 있는 시크교의 성지인 암리차르(Amritsar)의 황금 시원을 공격했고, 시크교도는 그해 10월 인디라 간디 총리를 암살하므로써 보복했다.
이후 시크교도들은 인도 정부로부터 탄압을 받았으며, 인도에서 5천명에 달하는 시크교도가 살해당했다.>
(서진근 편저 UN회원국 다이제스트에서)

시크교는 15세기 말 교조 나나크가 인도의 여러 성자를 만나 공부하고 힌두교의 信愛信仰(바크티)과 이슬람교의 神秘 思想을 융합하여 만든 종교이다.
시크교는 우상숭배를 거부하고 카스트제도를 부정하고 유일신을 믿으며 신 앞에서 만민이 평등함을 주장하고 윤회사상을 가지고 있다. 
교의(敎義)는  유일신에 귀의하여 신에 대한 사랑과 현세의 선행(善行)으로만 인간은 구제된다고 믿는 것이다.

"시크"라는 용어는 산스크리트어 Sisya(학습)에서 또는 Siksa(가르침)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시크라는 용어는 산스크리트어로 '교육' 또는 '학습'이라는 뜻의 시스야(sisya)에서 전례했다는 설과 '가르침'이라는 식사(siksa)에서 유래했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출처] 시크교 | 두산백과

성인들은 수염을 기르고 머리에 큰 터번을 둘렀고 어린이(미성년?, 미혼자)는 머리를 상투처럼 말아 묶었다.
시크교도는 다섯 개의 K, 즉 머리를 자르지 않는다(Kesh), 鐵 팔찌를 낀다(Kada),
短劍을 가진다(Kirpan), 빗을 소지한다(Kangha), 무릅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브릿지를 한다(Kaccha) 등 다섯 가지를  지킬것을 권장한다.
무릎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느슨한 브릿지) 등을 항상 몸에 지닐 것을 장려한다
[출처] 시크교 |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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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과 인도 국경.
라호르에서 파키스탄 이미그레이션 까지 택시로 왔다.
출국검사가 필요 이상으로 시간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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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철문을 통과해 인도 이미그레이션 쪽으로 걸어갔다.
 
인도에 입국해서 택시를 타고 암리차르 기차역으로 갔다. 500루피(약 $12)
역에서 가까운 곳에 호텔을 정했다.
기차역으로 가서 델리행 기차표를 예매하려니 컴퓨터가 작동이 않 돼니 내일 아침 8시에 오란다.
 
점심을 먹고 Golden Temple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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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차에서 내리는 시크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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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차역 앞의 오토릭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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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사원으로 가는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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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금사원으로 가는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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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금사원으로 가는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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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사원으로 가는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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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금사원으로 가는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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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 앞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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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금사원으로 들어가는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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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리타 사라스(불멸의 샘) 한가운데 세운 황금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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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배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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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배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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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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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사원 참배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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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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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사원 참배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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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배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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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배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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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중설교.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 부르며 분위기를 조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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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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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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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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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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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금사원 입장을 기다리는 참배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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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사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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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배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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供物.
성소에 바칠 공물을 정성스레 싸들고 긴 줄을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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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배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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頭巾.
총각이거나 머리를 기르지 않은 사람들은 두건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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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聖所.
참배객들으 공물을 바치고 악사들의 연주와 주문을 들으며 성소를 참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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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聖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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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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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所 천장.
황금으로 두껍게 치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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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所 천장.
황금과 화려한 장식물로 치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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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所.
빌려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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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금사원.
연못 속에 성소를 지었고 샘 주변은 건물로 둘러쳐 외부와 완전히 차단시켜놓았다.
빌려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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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크교도 무사들.
빌려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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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泉과 聖所.
빌려온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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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역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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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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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하고 있는 勇士들. 델리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며.
제일 오른쪽이 한동기 회장 69세.
가운데 윤광열 사장 68세
왼쪽이 김중석 이사 60세.
 
 
 
시크 왕국과 시크전쟁.
 
19세기 초 시크교도 란지트 싱이 펀자브지방에 흩어져 있는 시크교도를 규합하여 왕국을 건설했다.
영국이 인도를 거의 점령했을 때에도 시크 왕국은 강력한 국력을 과시하며 1838년 영국이 파키스탄으로 가는 길을 열어 달라고 할 때도 이를 거절했다.
1839년 란지트 싱이 죽자 시크 왕국은 여러 세력으로 분열되고 혼란에 빠졌다.
 
1845년 12월 영국군의 공격을 예방한다는 구실로 영국령 인도를 침범했다가 영국과의 제1차 시크전쟁이 발발해 크게 패배했다.
 
1848년 4월 물물탄의 지방 장관 물라지의 반란으로 전국적인 봉기가 일어나 다시 영국과 제2차 시크전쟁이 발발했고
치열한 전투 끝에 시크교도들은 패배하고 1849년 3월 12일 펀자브 지방이 영국령 인도에게 병합당하면서 시크 왕국은 붕괴했다.
 
 
암리차르 대학살.
 
암리차르 시 한복판에 잘리안왈라바그 광장이 있다.
1919년 4월 13일 1만여 명의 인도인들이 이곳에 모여 영국의 공공집회금지 명령에 항의하는 집회를 하고 있었다.
이 지역을 관할하고 있던 레지널드 다이어 장군은 소총부대를 동원하여 광장에 모인 군중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했다.
영국은 397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으니 인도인들은 800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주장하였다.
 
 레지널드 다이어 장군은 이 지역에서 영국인 5명이 살해당했고 영국인 선교사가 공격당하는 등에 대한 보복성 공격이었다.
 
인도에서는 학살 소식이 전해지면서 영국에 협력해 오던 중산층들이 민족주의자로 돌아섰다.
이로써 영국의 헌정개혁 노력은 무너지고 영국 인도통치의 도덕적 기반이 무너져내리고,
인도에서 대영제국의 태양은 저물기 시작하였다
 
 
인디라 간디 암살.
담다디 탁살 시크 분리독립주의자들과 그들의 지도자 자르나일 싱 빈드란왈레는 시크교 신정 공화국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해왔으며 황금 사원에 피신해 있는 상태였다.

인디라 간디 총리는 인도의 국체에 대한 그러한 도전을 뿌리 뽑기 위해 1983년 6월 자르나일 싱이 숨어있는 시크교의 가장 신성한 성소인 암리차르의 황금사원을 습격하는 군사작전을 감행했다.
당연히 군사작전은 수많은 인명 피해와 신전의 훼손을 불러올 수밖에 없었다.
 
시크교도들은 인도군이 수천 명의 민간인을 학살했으며 고의적으로 신전 일부를 파괴했다고 믿었다.
1984년 10월 31일 아침 9시경 인디라 간디 총리는 공관에서 나오다가 자신의 경호원인 시크교도 2명에 의해 사살됐다.
 
시크교도들의 독립운동을 막기 위해 그들의 성전인 황금사원에 침입해 4백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푸른 별 작전의 결과로 목숨을 잃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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